푸른환경산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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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11 11:14

[수도권] 서울 시내 건물 200곳 '석면 지도' 내달 완성

글쓴이 : 최고관리자

북한산 자락 강북구 인수동의 '서울영어마을 수유캠프'는 지난달 29일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회화 실습을 하러 입소했던 학생들이 신종플루를 피해 떠나고, 체험학습실과 기숙사 8개 동은 텅 빈 상태였다. 정적이 깨진 것은 오전 9시30분쯤. 흙먼지 잔뜩 묻은 승합차 한 대가 캠프 내로 들어섰다.

드르륵 차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내려선 것은 앳된 얼굴의 20대 여성 두 명. 원진재단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강진주(23) 연구원과 산업보건학을 전공 중인 대학생 보조원 김정화(21)씨였다. 이들은 차 뒤쪽 좌석에 놓인 높이 30㎝ 정도의 기계장비와 방진마스크, 분무기, 칼 따위가 담긴 종이상자를 작은 손수레에 싣더니 담담히 말했다. "가시죠, 석면 찾으러." 세계보건기구(WHO)가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침묵의 살인자' 석면을 추적하는 석면 지도 작성팀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침묵의 살인자' 추적

미세광물인 석면은 불에 타지 않고 가벼운 데다 부식에도 강해 한때 '꿈의 광물'로 불리며 보온단열재나 건축자재에 많이 쓰였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200만t의 석면이 사용됐고, 그중 82%는 건축자재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입자가 미세한 석면이 폐에 들어가면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석면폐·중피종 같은 치명적인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건물이 낡아 건축자재가 파손되거나, 건물을 철거할 때 석면이 포함된 자재를 함부로 다루면 사람들이 석면에 노출될 수 있다.

서울시가 지난 3월 원진재단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 5개 연구기관을 동원해 '석면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다. 우선 시내 건물 200곳을 선정해 상업용·업무용 등 12개 용도로 나눈 뒤 석면을 함유한 자재가 어디에 얼마만큼 쓰였는지 도면에 표시해 보면, 어떤 건물 어디에 석면이 많은지 파악, '관리 매뉴얼'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서울영어마을에 도착한 지 10분 뒤 강 연구원은 원범희(64) 수유캠프 시설팀 소장의 안내를 받아 기숙사 C동 1층으로 향했다. 형태가 똑같은 A1~F 8개 동의 기숙사 가운데 C동을 대표로 골라 석면 검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건물 입구 102호실은 2층 침대 3개가 놓이고 문쪽에 화장실이 딸린 전형적인 기숙사 방이었다. 강 연구원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똑똑' 벽을 두드려 보더니 원 소장에게 말을 건넸다.

▲ 지난달 29일 원진재단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강진주 연구원이 강북구 인수동 서울영어마을 수유캠프 내의 기계실에서 석면이 있을 법한 자재의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벽체는 모두 콘크리트죠?"

원 소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 연구원 얼굴이 밝아졌다. "이런 벽체에는 석면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시료를 채취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붕재로 많이 쓰이는 슬레이트, 칸막이로 흔히 쓰는 섬유강화 시멘트판, 배관을 감은 보온재 따위가 석면이 있을 법한 자재들이죠."

그것도 잠시, 천장을 둘러보던 강 연구원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순식간에 2층 침대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그는 천장에 붙은 점검구(벽·천장·바닥 안쪽의 배선·배관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뚫어놓은 공간) 뚜껑을 열어젖혔다.

"천장은 석고보드네요. 석고보드 속엔 석면이 포함된 경우가 있으니 상태를 확인해 볼게요."

강 연구원은 검사 중 석면을 들이켜지 않도록 쓰는 특급 방진마스크를 준비했다. 그 사이 보조원 김씨가 폭 20㎝, 높이 30㎝ 남짓한 사각형 기계장비를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바닥에 기계를 내려놓은 김씨는 끝에 흡입기가 붙은 호스를 기계에 연결했다.

"건축자재가 낡거나 부서져서 석면이 공기 중에 나오고 있는 건 아닌지, 시료를 채취해서 확인하는 고용량 펌프예요. 2시간 동안 공기를 빨아들여 시료를 확보해 따로 석면 분석을 할 겁니다."

김씨가 펌프 설치를 마치자, 강 연구원이 석고보드 시료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칼과 T자형 시료채취기를 들고 천장 점검구 입구에서 석고보드 조각을 떼어내, 시료보관용 비닐봉지에 담는 그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시료를 어디에서 채취했는지, 석고보드가 어느 정도 면적에 쓰였을지 도면에 기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석면 지도' 12월 완성

검사는 쉴 새 없이 계속됐다. 강 연구원은 가냘픈 몸으로 곳곳을 살폈다. 층층마다 방을 둘러보고 천장 점검구를 열어 시료를 채취하는가 하면, 좁은 점검구에 붙은 사다리를 타고 옥상에 올라가 지붕재도 뜯어냈다. 모든 건물을 총괄하는 공용 기계실과 변전실은 물론, 각종 배관을 모아놓은 지하터널인 공동구(共同溝)까지 온 건물을 훑었다. 2시간 남짓 계속된 '석면 추적'은 정오쯤에서야 끝났다. "새 건물인 데다 관리도 잘돼 있어서 석면 걱정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강 연구원을 비롯한 여러 연구원이 달라붙어 그린 '석면 지도'는 12월쯤 완성된다. 서울시는 지도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석면 마스터 플랜'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김재민 클린도시담당관은 "우선 200개 건물의 조사 결과를 보고 관리 매뉴얼을 만든 뒤, 이번 지도와는 별도로 2011년까지 시 소유 1124개 건물의 석면 지도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석면 지도가 있으면 건물을 수리·철거할 때 관리자가 도면을 참고해 석면이 있을 법한 자재를 따로 관리할 수 있어요. 시민들이 석면에 노출될까 겁내지 않고 지낼 수 있도록 상세하게 그릴 계획입니다."